지 변호사는 한국의 과제를 구체적으로 짚었다. "국내 기업이 EU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후전환계획을 경영 전략에 통합해야 한다"며 "특히 중소기업은 대응 여력이 부족하므로, 정부가 기술 지원과 비용 지원을 병행하지 않으면 공급망 단절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녹색전환연구소, 공급망실사법 토론회 모습 /사진=녹색전환연구소
녹색전환연구소, 공급망실사법 토론회 모습 /사진=녹색전환연구소

기업·정부·시민사회의 입장 교차...한국, 국제 규범 제정자로 나서야

발제 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학계, 산업계, 시민사회, 정부 관계자가 다양한 시각을 제시했다.

최정윤 한국법제연구원 법학기초교육연구센터장은  법학기초교육연구센터장은 "한국은 아직 CSDDD와 같은 법제가 없어서 EU처럼 규제 피로도를 이유로 실사와 기후전환계획을 분리하려는 유혹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기후위기의 긴박성, 국제 ESG 규범 동향, 공시 신뢰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실사 체계와

기후전환계획의 연결구조를 통합하는 방향성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은 제도 정비를 통해 규범 수용자(rule follower)가 아닌 규범 제정자(rule maker)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유정 변호사(기후솔루션)는 "EU CSDDD의 경우 실사가 다루어야 하는 환경영향에 기후영향을 포괄하고 있지는 않지만 법률 적용 대상이 되는 기업들에게 실사 체계와 별도로 기후전환계획을 채택해야 할 의무를 부과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한국 법체계에 적합한 기후실사 방식을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정의로운 전환 관점에서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강조했다.

이선미 UN글로벌콤팩트한국협회 팀장은 "기업인권환경실사법은 기업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지속가능한 경영을 지원하는 기반이 돼야 한다"며 △정부와 대기업의 협력업체 지원체계 △파트너십 강화 △전환금융 연계 등을 제시했다. 그는 "기업인권환경실사법이 국제기준, 특히 EU CSDDD 내 기후전환계획과 정합성을 갖도록 보완이 필요하다" 말했다

정희섭 현대자동차 상생협력실장은 법규 적용시점 연기에 대한 검토를 요구했다. 공급망 실사가 비용과 인력 배치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 만큼, EU 등의 사례를 참고해 현실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실장은 "CSDDD 등 공급망 지속가능성 관련 법규들이 완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와 상충되는 국내법 도입은 국내 기업들에게 혼선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광희 ㈜풍강 전무는 자동차용 체결 부품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기업이다. 이 전무는 현대자동차 1차 협력사로서 중소기업 내 전문인력 부족과 비용 부담 등 중소기업의 현실을 설명했다. 

이 전무는 "CSDDD 대응이나 기후전환계획의 실질적 이해에는 상당한 선행 투자가 필요하다"며 "이를 뒷받침할 지원사업이 지속적으로 나와 운영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한시적이라도 중소기업이 관련 인력을 배치하고 육성할 수 있도록 비용 지원 제도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종민 산업통상자원부 산업환경과 행정사무관도 기후실사 필요성에 대해서는 일부 동감했다.  다만, 기업 경쟁력에 대한 부작용은 최소화된 균형 잡힌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이야기했다. 박 행정사무관은 "최근 CSDDD 개정안은 기후전환계획 관련 규정을 원안보다 완화했다"며 "법안에 동 규정 추가 시 EU 사례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당 법안이) 국내 다른 ESG 제도와 정합성이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EU의 경우 제도 간 시너지 확보와 기업의 혼란 최소화를 위해 ESG 공시와 CSDDD를 긴밀히 연결 중이다.

박 행정사무관은 "한국 역시 ESG 공시나 ESG 지원법과 기업 인권·환경 실사 간에 유사한 부분은 가급적 연계하거나, 일치시키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토론회는 한국형 공급망실사법의 구체적 설계 방향을 모색한 자리였다.

토론회의 공통된 문제의식은 한국은 EU·프랑스·독일 등 주요국의 제도를 수용하는 규범 수용자에 머물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규범을 설계하는 '규범 제정자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인권·환경 실사에서 기후전환계획을 분리할 것이 아니라 통합적으로 제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동시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부담 격차를 조정하고, 정부의 지원정책을 병행하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됐다.

참석자들은 △기업 인권·환경 실사의 법제화 필요성 △기후전환계획 포함 여부 △기업 부담 완화 및 지원체계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의 역할 분담 등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기후위기 시대, 공급망 실사와 기후전환계획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이번 토론회를 통해 한국이 국제 규범을 수동적으로 따라갈지, 아니면 능동적으로 규범을 제정해 나갈지는 향후 법제화 과정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다.